그렇게 말하고 나는 돌아섰다. 집에 도착해서 잠들때까지, 나는 그 일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내일쯤 여희의 이야기가 모두 끝난다는 것을 그 둘째 오라비에게 알려준 것이, 과연 잘 한 일일까.
다음날, 내가 이 부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부자와 그 후처, 유모와 두 아들까지, 처음 내가 여희를 보러 왔던 날처럼 다 모여 있었다. 유모가 나를 붙잡고 흐느꼈다.
“도사님. 아기씨께서, 아기씨께서.”
불길한 느낌이 들어, 나는 그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여희의 방으로 홀로 들어섰다. 그리고 따라들어오려는 이부자의 면전에서 문을 닫아버렸다.
여희는 평소와 같이 대나무발 건너편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옷차림이 평소와 달랐다. 단정한 도복에 머리에는 건을 두르고, 무릎 위에는 패검을 얹은 채였다. 목이 칼칼해졌다.
“오셨습니까?”
“예. 이야기의 마지막을 들으러 왔습니다.”
“부디, 들어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10
여희: 그때로부터, 같은 시간이 돌고 돌았습니다. 해도 달도 뜨지 않는 곤륜. 붉은 안개는 수시로 몰려오고, 저는 한시도 요지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베어야할 것을 베지 못했으니까요. 아래 성채에서는 싸움이 계속되어, 때로는 밀리고 때로는 밀어냈지만, 점차 수세에 몰려 하나 하나의 성채는 깨지고 전장은 점점 요지 가까이로 몰려왔습니다. 저는 마음이 다급했지요. 한시라도 빨리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물을 베지 못하는 저는, 안개를 베지 못하는 저는 도움이 될 수가 없었어요. 서왕모께서는 그런 저를 이따금 찾아와 기운을 북돋워주셨습니다. 제가 아무리 요지를 들여다보아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자, 서왕모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현세에 두고 온 것은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것인가?’
놀라서 물었지요. ‘거부한다고요? 제가?’‘그래. 그러지 않고서야 요지에 피를 섞은 이가 그것을 보지 못할 리가 없지.’영문을 모르고 마른 입술만 달싹거리는데, 그분께서 덧붙여 말하셨습니다. ‘아쉽구나. 그대가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그대에게 부탁할 것이 있었는데.’무엇이냐고 여쭈었지요. ‘지금 그대가 있는 곳에, 삼라의 그곳에, 어떤 이가 있다. 그에게 내 말을 전해달라 부탁하고저 했다. 아마도 그 인연 때문에 그대고 수망초를 먹고 이곳으로 들어온 모양이니’잘 들어주세요. 진도장. 그분의 말씀입니다. ‘예전에, 나는 삼라에 말을 걸 수 있었다. 삼라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었고, 삼라를 내가 꿈꿀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러지 못한다. 삼라에 곤륜은 전설이 되었고, 곤륜에 삼라는 목적이 되었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오갈 수도 없는... 나는 그곳에 있는 이에게 내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지쳤다. 내 존재의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쩌면 이대로, 영영 이대로 다시는 삼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 말을 전해다오. 내게 돌아오라고.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이제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저는 그분께 여쭈었습니다. ‘제가 누구에게, 어떤 사람에게 그 말을 전해야 합니까?’그러자, 그분께서 나를 보고 웃으셨습니다. ‘나는 그가 삼라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지 알지 못한다. 다만, 딱 한번 그대에게 내 본모습을 보여주겠다. 이것이 나다. 그리고 그대가 말을 전해야할 사람 역시 이와 같다. 그는 삼라에 남겨두고 온 내 미련의 일부다. 나를 보라. 그러면 내 말을 전해야할 사람도 알 수 있으리라.’
눈이 부셨습니다. 잠깐 눈이 아릴 정도로 부셨습니다. 그리고, 그 빛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밝고 아름다운 불꽃의 긴 꼬리를 늘어뜨린 새를 보았습니다. 그 새는 한 사람의 어깨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절세가인보다 아름답고, 어떤 장수보다 당당한 이,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며, 나무이지만 나무가 아닌 존재.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인’이라는 것을.
그 모습을 본 것은 아주 잠깐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붉은 안개가 요지를 지키는 마지막 성채 가까이까지 몰려왔습니다.
‘아아, 이번에는 요지를 지킬 수 있을까. 부디, 어서 돌아가라. 나는 싸우러 가야 한다. ’
그분께서 몸을 날려 싸움 한 복판으로 뛰어드셨습니다. 그 뒷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저는 다시 요지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보였습니다. 요지의 물에 비친 모습이.
제 모습. 흐트러진 옷을 입고, 수망초를 내 손으로 짓이겨 물에 타는 제 모습이요. 죽자, 차라리 죽자 하면서 그것을 마시는 제 모습이요. 보였습니다.
그것이 제가 베어야할 모습이었지요. 그것을 베기 전에, 저는 이전까지 붉은 안개로 보이던 것을 돌아보았습니다. 안개가 아니더이다. 사람이더이다. 나와 똑같은, 성채의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더이다.
똑같았습니다. 눈은 두 개, 코는 하나, 입도 하나. 두 손과 두발, 지친 안색, 겁에 질린 눈. 손에 든 무기 또한 다를 게 없었습니다. 녹슨 검, 부러진 몽둥이, 무딘 창. 저는 그 많은 마 중에 단 하나의 얼굴을 금세 알아보았습니다. 그건, 바로 제가 두고 온 삼라의 제 몸 껍데기와 똑같더군요.
하면.
여희: 요지의 수면에는 수망초에 취해 잠든 제 얼굴이 보였습니다. 인형처럼 잠든 나를 지켜보다가 한숨을 쉬고 나가는 아버지가 보였습니다. 살그머니 들어와 내 코위에 새털을 갖다대는 새어머니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큰 오라버니. 나를 보살피던 시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오라버니는 내 방 안으로 들어오셨지요. 걱정스러운 눈길로 주변을 살펴보고, 발을 젖히고 내 옆에 앉으셨지요. 잠든 나를 보며 탄식하고, 내 뺨을 쓰다듬으셨지요. 시비가 갑자기 돌아오지는 않을지 잠시 귀를 기울이시고는. 제 입에 입을 맞추셨지요. 제 옷깃을 풀어헤치고 차디찬 살갗을 더듬으며 거친 숨을 내쉬다가 시비가 돌아오는 기척에 황급히 자리를 떠나셨지요. 연달아 들어온 시비는 작은 오라버니와 함께였습니다. 작은 오라버니는 아직도 잠에서 깨지 않은 나를 걱정하며 흐트러진 이불을 곱게 덮어주고는 이내 그 옆에서 시비를 끌어안고 희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을 마친 뒤 떠나실 때, 기루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제 경대에서 금비녀 몇 개를 꺼내 가셨습니다. 어서 나으렴, 내 동생아.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저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삼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요지의 수면을 베지 않았습니다. 이제 똑똑히 알아볼 수 있게 된 붉은 안개의 적군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저도 죽은 성채의 사람들과 함께 싸웠습니다. 적을 밀어내고, 마지막 성채를 지켰습니다. 싸움이 끝나고 나자, 서왕모께서 책망하는 눈길로 저를 보시더이다.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 하지만 그분은 제 어깨를 도닥이셨습니다. ‘너는 돌아가야 한다. 위선과 애욕, 미움과 가증 모두 삼라가 살아있는 세계라는 증거다. 너는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살아있기 때문에 그들은 악할 수 있다. 곤륜은 이미 살아있는 세계가 아니다. 천계와 하계 사이를 잇는 모든 문이 닫혔을 때 , 곤륜도 이미 죽은 것이다. 곤륜은 무덤의 세계, 몽상의 세계, 꿈의 세계이며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는 곤륜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체가 있는 삼라를 지키기 위해 상제께서 마지막 방어할 곳으로 허락하셨기 때문이다.’라고.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어째서 그런 흙탕물 같은 세상을 곤륜이 지켜야 합니까. 피와 순수 밖에 남지 않은 곤륜이 평화의 안식으로 가장한 삼라보다 백만배 천만배 아름답습니다. 왜 더 아름다운 것이 덜 아름다운 것을 위해, 더 순결한 것이 덜 순결한 것을 위해 희생해야 합니까?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예. 그렇게 외쳤지요.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말씀을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은 자들이 산자보다 더 따스한 손으로 떠밀어주기도 했습니다. 돌아가라고. 어서 돌아가라고. 그래서, 저는 요지의 수면을 베었습니다.
... 이야기는, 이제 끝입니까?
눈을 떴을때, 저는 당신을 보았지요, 진도장. 모든 외양이 달랐지만, 저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서왕모라 일컬어지던 그분께서 찾던 분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요. 그분이 삼라에 남겨두고온 미련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요. 돌아가세요. 그분께서 기다리십니다. 당신이 있어야할 것은 이곳이 아닙니다. 가세요.
이소저, 당신은...?
돌아가렵니다. 제가 있어야할 곳은 이곳이 아니니까요. 저는 이 말을 전하러 왔습니다. 그러니, 이제 돌아가렵니다. 그곳으로. 삼라를 위해 싸우기 위해.
11.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무릎 위에 놓인 패검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살짝 웃음을 지었다.
“곤륜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어디에?”
“세 치의 바늘 끝 위에, 그리고 한 자 칼날 위에.”
그녀는 칼을 뽑아 들었다. 목을 찔렀다. 문이 열렸다. 그녀의 가족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울부짖음, 비명, 통곡, 한숨.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그 방을 나왔다.
나는 그 길로, 얼마 되지 않는 짐마저 팽개치고 허위허위 마을을 떠났다. 떠나면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부자의 아들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나를 쫓아올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다. 곤륜의 유령이, 큰 북과 징을 울리며 그 위풍당당한 유령의 군대가 내 뒤를 쫓아올 것만 같아서였다.
끝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망각으로 이어붙인
껍데기 같은 내 불사의 삶.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뒤를 돌아본다.
허상의 군대가
실상의 세계에 빌어 붙은 나를
추적하는 것만 같아서.
실상의 나는 허상이 두려워
목을 움츠리며 도망친다.
아, 곤륜이여.
세 치 바늘 끝 위에 서있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산이여.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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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잘 봤습니다. 하마터면 1부만 보고 말뻔 했네요.
2007/08/12 18:14아~ 너무 멋집니다..ㅜ.ㅜ
2007/08/13 17:08근데 이거 그냥 단편이 아니라 수니랑 연관된 이야기인 것 같은데..아닌가요?
그럼 수니는 언제 나오나요? ㅇㅅㅇ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2007/08/14 17:13와아 >ㅅ</
2007/08/14 19:14너무 잘 읽고 갑니다. 모종의 작업하시느라, 레이드하시느라 바쁘시다 들었기에 이런 주옥같은 단편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이런 성은이 망극할데가ㅠ
2007/08/14 23:16사실 아까 낮에 읽었었는데, 읽고 좀 먹먹한 기분에 댓글을 미처 못 달았어요. 다 읽고 나니 마치 꿈을 꾼것처럼 몽롱한 기분이 듭니다. 짧고 간결한 문장에서는 여전히 삼라만상은 생생하게 살아 있네요. 몇번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저는.
+ 괜스레 가스라기 모니터링하던 시절이 그립습니다ㅠ
멍...
2007/08/17 14:42간만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꾸벅.
두분의 소설을 늘 잘읽고 있는 독자로 좌백님이 진산님의 단편을 부러워 하는지
2007/09/20 21:56진산님의 단편을 처음 보는 저는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네요.
가슴에 싸하고 남는 전율과 여운이 모니터에서 눈을 뗄수가 없게 하네요..
여하튼 잘 읽었습니다.
너의 위치를 방문한 즐기는!
2007/10/18 02:49관심을 끌. 너가 동일할 좋을 지점을 다시 배치할 것 을 나는 희망한다.
2008/03/13 05:47중대한 위치 축하!경이롭 위치!
2008/03/13 06:37친구는 너의 위치의 현재 팬이 되었다!
2008/03/13 07:24중대한 위치 축하!경이롭 위치!
2008/03/13 08:10중대한 위치 축하!경이롭 위치!
2008/03/14 03:14이 위치는 유익한뿐 아니라 재미있는다!
2008/03/14 04:01많은 감사 우수한 위치! 나는 너의 웹사이트를 사랑한다!
2008/03/14 04:02